<세한도> _ 박철상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통해 본 한국문화의 고풍스러움
영국의 유명한 역사학자 홉스봄은 전통이란 근대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산업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이중혁명이 가져온 근대는 인류 문명에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 와중에 예전의 일상적 삶이 전통으로 규정되기에 이른다. 전통과 근대의 괴리는 정체성의 균열을 일으켰고 이는 주체적인 근대화에 성공하지 못한 한국의 상황에서 더 심각했다. 특히 세계화가 진전되고 있는 이 시점에 전통을 재해석하고 발굴하는 일은 올바른 주체를 정립하기 위해 요청되는 과제라고 하겠다.
'키워드 한국문화' 시리즈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재발견하는 작업이다. 즉, 한국문화의 정수를 찾아 그 의미와 가치를 정리하는 일이다. 이 시리즈는 한 장의 그림 또는 하나의 역사적 장면을 키워드로 삼아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분석하고 소개한다. 이 책은 시리즈의 제 1권으로 「세한도」를 다룬다. 추사 김정희가 오랜 유배 생활에 지쳤을 때, 그를 위로해 준 충실한 심복이자 친구인 이상적이 존재했다.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가 그린 것으로 이 그림에는 역관 이상적과 추사가 나눈 우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책의 저자에 따르면,「세한도」는 단순한 그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의 학예일치의 경치가 구현된 작품이다. 기존의 「세한도」연구가 미술사학 쪽에서 서술된 것이라면 이 책은 고문헌 연구가의 시선으로 분석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즉, 이 책에서 추사의 그림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당대의 문화를 나타내주는 역사적 사료이자, 문화적 산물이며, 세계관을 담보한 작품인 것이다.
실제로 추사의 그림을 분석하면 여러 결을 느낄 수 있다. 우선 이 그림에는 추사의 개인적인 감정이 표출되어 있다. 추사는 「세한도」에서 물기 없는 붓으로 겹쳐 칠하는 묵법을 통해 쓸쓸한 마음을 표현했다. 다음으로 당대에 유행했던 표현 기법을 알 수 있다. 청나라에서도 유명했던 추사의 솜씨는 「세한도」를 통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김정희는 당시 청대 화가들의 기법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설명된 그림의 다양한 결을 읽으며 독자는 한국 문화의 실체에 대해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학예일치의 경지, 조선 예술의 진수 「세한도」를 만나다!
세상 모두 등 돌릴 때 끝까지 신의를 지킨 우선 이상적
그 한 사람에게 바치는 추사 김정희의 연서戀書
「세한도」에 담긴 조선시대 학예일치 문인화의 정수를 추사 김정희의 일생과 함께 보여준다. 추사가 「세한도」를 그리기까지 역관 이상적과 나눈 변함없는 우정, 그리고 그림 속에 녹여낸 학문의 경지를 따라가며 깊이 있는 그림 독법을 제시했다.
추사 김정희와 우선 이상적이 나눈 가슴 시린 우정
「세한도」가 오늘날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것은 그 안에 추사 김정희와 역관 이상적의 가슴 시린 우정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집안이 화를 당해 먼 제주도까지 유배됐을 때, 추사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내도, 절친했던 친구도 세상을 떠나고, 권세 있는 자들은 발길을 끊었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 변함없이 추사에게 먼 곳에서 구해온 책을 가져다주며 우정을 더욱 굳건히 지킨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우선 이상적이다.
고문헌연구가가 ‘읽은’ 「세한도」
지금까지 「세한도」를 이야기한 책은 많았다. 주로 미술사학계에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세한도」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조선시대 학예일치의 경지가 구현된 하나의 정신으로 봐야 한다. 그렇기에 고문헌연구가 박철상 선생이 쓴 「세한도」는 그 의미가 더욱 깊다. 이 책은 박철상 선생이 평생을 바쳐 연구한 추사 김정희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2003년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책 『완당평전』에서 200여 군데에 이르는 오류를 발견한 바 있는 박철상 선생은 『세한도』에서 추사 김정희와 관련된 새 자료를 공개하며 기존의 연구를 바로잡고, 새로운 연구 성과를 더했다. 김정희가 편지 한 통 한 통을 보낸 날짜까지 치밀하게 고증했으며, 김정희가 제주도로 유배되기까지 어떻게 심문을 받았는지, 그날의 현장까지 모두 되살려냈다. 이런 고증이 바탕이 되어 기존의 연구 중 잘못된 부분은 바로잡고, 새로운 해석을 더했다. 그렇기 때문에 「세한도」의 내용은 기존의 연구 성과를 훌쩍 뛰어넘는다. 특히 말미에 부록으로 실린 청대 문사들의 제영이 모두 완역돼 실렸다는 점은 큰 의미가 있다. 이는 추사가 청나라 문인들과 교유하며 학문을 습득하고 그들과 깊은 친분을 나눴다는 점을 보여줄 뿐 아니라, 추사의 글씨와 그림이 한국 뿐 아니라 청나라에서까지 널리 인정받고 회자됐다는 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세한도」로 보는 조선 문인화 학예일치의 경지
지금까지 수많은 저술과 논문 주제로 다뤄진 「세한도」는 당연히 미술사학도들 사이에서 인기 소재였지만, 저자는 단지 그림을 그린 기법이나 그림 속 사물에만 중점을 두지 않고 「세한도」가 지닌 문화사적 의미를 파헤치는 데 중점을 뒀다. 「세한도」를 단순한 그림이 아닌 문화로 본 것이다. 추사는 「세한도」에서 물기 없는 붓으로 겹쳐 칠하는 묵법을 통해 쓸쓸한 마음을 표현했고, 당시 조선 화가들이 추앙하던 청대 화가들의 기법을 모두 펼쳐 보였다. 뿐만 아니라, 한겨울에도 변치 않는 푸르름을 지닌 소나무와 잣나무를 그려 염량세태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결같음을 지키는 선비의 지조를 그려냈다. 추위가 매서운 새해, 겨울이 되어서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 우리에게는 우선 이상적처럼 변치 않는 친구가 있는가? 슬프구나, 비부!
이상적은 추사가 유배를 떠나기 전 이미 5차에 걸친 연행을 했었다. 그는 연행할 때마다 추사를 위해 청나라 학계의 최신 정보를 전해주었고, 진귀한 서적들을 구해다주었다. 평소에 교분이 있던 사람들도 바다 밖 멀리 유배된 자신을 위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유배 가기 전이나 유배 간 뒤나 언제나 똑같이 자신을 대하고 있는 우선의 행동을 보면서 추사는 문득 『논어』의 구절을 떠올렸다. 「자한」 편의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라는 구절이었다. 공자가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나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꼈듯이, 사람도 어려운 지경을 만나야 진정한 친구를 알 수 있는 법이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추사는 우선이야말로 공자가 인정했던 송백松柏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우선에게 무언가 보답을 하고 싶었지만 바다 멀리 유배객 신세의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상적의 뒤를 봐줄 수도 없었고, 그에게 돈을 줄 수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것뿐이었다. 붓을 든 추사는 자신의 처지와 우선의 절개를 비유한 그림을 그려나갔다. 창문 하나 그려진 조그만 집 하나, 앙상한 고목의 가지에 듬성듬성 잎이 매달린 소나무 하나, 그리고 나무 몇 그루를 그렸다. 눈이 내린 흔적도 없지만 바라보기만 해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쓸쓸하고 썰렁했다. 집 안에는 누가 있을까. 추사 자신만이 혼자 남아 있을 것이다. 저 앙상한 나무들마저 없다면 그 쓸쓸함을 저 집 혼자 감당할 수 있을까 싶다. 추사는 또 다른 종이 위에 칸을 치고 글씨를 써내려갔다. 자신의 심정을 우선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고맙네. 우선! _본문에서
태사공太史公은 ‘권세나 이권 때문에 어울리게 된 사람들은 권세나 이권이 떨어지면 만나지 않게 된다’고 하였다. 그대 역시 세상의 이런 풍조 속의 한 사람인데 초연히 권세나 이권의 테두리를 벗어나 권세나 이권으로 나를 대하지 않았단 말인가? 태사공의 말이 틀린 것인가?
공자께서는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였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사시사철 시들지 않는다. 겨울이 되기 전에도 소나무와 잣나무이고, 겨울이 된 뒤에도 여전히 소나무와 잣나무인데, 공자께서는 특별히 겨울이 된 뒤의 상황을 들어 이야기한 것이다. 지금 그대가 나를 대하는 것은 이전이라고 해서 더 잘하지도 않았고 이후라고 해서 더 못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전의 그대는 칭찬할 게 없었지만 이후의 그대는 성인의 칭찬을 받을 만하지 않겠는가? 성인이 특별히 칭찬한 것은 단지 시들지 않는 곧고 굳센 정절 때문만이 아니다. 겨울이 되자 마음속에 느낀 바가 있어서 그런 것이다. 아! 서한시대처럼 풍속이 순박한 시절에 살았던 급암汲?이나 정당시鄭當時같이 훌륭한 사람들의 경우에도 권세에 따라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지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였다. 하비下? 사람 적공翟公이 문에 방문을 써서 붙인 일은 절박함의 극치라 할 것이다. 슬프구나! 완당노인이 쓴다. _본문에서
_박철상
1967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났고, 한학자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우리의 고전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이후 조선시대 장서인藏書印에 대한 일련의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또한 조선후기 추사 김정희의 학문에 대해서도 심층적인 연구를 수행했다. 이 밖에도 옛 간찰, 금석문, 조선후기 장서문화, 연행, 여항인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06년 국립중앙박물관 '추사 김정희-학예일치의 경지' 특별전 자문위원 등을 담당하였으며, 그림과 책 연구자들의 모임 '포럼 그림과 책'의 공동대표이다. 논문으로 「『완당평전』, 무엇이 문제인가?」「조선후기 목활자 ‘장혼자張混字’ 명칭의 재검토」「추사 김정희의 저작 현황 및 시문집 편간에 대하여」 등 20여 편이 있다. 역서로 『서림청화書林淸話』가 있고, 공저로 『19세기 조선 지식인의 문화지형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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