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 항일의 삶터 되살리자”…용정 명동촌 ‘별헤는 밤’
한겨레 | 입력 2009.08.14 19:30
[한겨레] '3·13 만세운동' 주도지, 산업화에 옛모습 사라져
조선족 '민속촌' 복원 나서…윤동주 생가 등 위치
백두산·고구려 유적지 등 연계 관광효과도 기대
12일 오전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명동촌.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어귀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니 옥수수밭 너머로 공사가 한창인 기와집이 보인다. 칠이 벗겨져 하얗게 마른 기둥은 번듯한데, 지붕엔 기왓장이 대충 쌓여 있다. 마당에는 목재와 공구 따위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조선족 황길남(70)씨는 요즘 이곳을 매일 찾는다. 버려진 이 집을 사들여 한달 전부터 옛모습 그대로 복원하고 있다. 오늘은 강변 근처 폐가에서 운좋게 옛기와를 구했다며 콧노래를 부른다. "이 집이 문익환 목사네가 살았던 곳입니다. 100여년 전 함경도의 전형적인 살림집이죠."
명동촌은 1899년 김약연을 비롯한 함북 종성 오룡천의 다섯 가문 142명이 두만강을 건너와 개척한 항일기지였다. 이들이 세운 명동학교는 북간도에 흩어져 있던 민족학교 가운데서도 최고의 명문이었다. 학생들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13일 용정에서 열린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황씨는 이런 명동촌을 '조선족 민속촌'으로 복원하려는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주정부에서 고위 간부를 지낸 그는 이들과 교류하며 민속촌 부지와 복원 대상, 비용 등 구체적인 조각들을 맞춰가고 있다. 문씨 집안이 살던 집을 복원하는 것은 그런 구상을 앞서 실현하고픈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다. 그는 마을 주변에 '제2의 명동촌'을 꾸려 우리 민족의 역사와 조상들의 삶을 후대에 전하자는 구상엔 용정시와 연변자치주 정부도 기본적으로 공감하고 있다며, 중앙정부의 지원만 이뤄지면 곧바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명동촌은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함경도 살림집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마을이었다. 가운데 부엌을 두고 서쪽엔 방을, 동쪽엔 외양간을 들인 이른바 양통형 구조의 집들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개혁개방과 함께 산업화 바람이 불어닥치면서 이런 모습이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세월의 때가 묻은 집들은 방치되거나 시멘트집으로 뜯어고쳐졌다.
민속촌은 이렇게 파괴된 원형을 복원하고, 민족의 문화를 되살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연변대의 한 교수는 "용정은 중국내 조선족 문화의 발상지이고, 명동촌은 조선족의 역사가 숨쉬는 곳"이라며 "이를 되살리는 것은 우리 민족의 혼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창바이산(백두산)과 고구려 유적지, 조선족 민속촌을 묶는 민족관광 벨트가 형성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연변의 또다른 조선족 마을인 화룡의 북고성도 복원이 검토되고 있다. 우리 민족이 옛부터 토성을 쌓고 마을을 이룬 이곳은 간도와 만주의 민족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2000년 무렵 토성을 복원하기 위해 주민들을 모두 다른 곳으로 이주시켰지만 이후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진척을 보지 못했다. 화룡시 정부는 이 사업을 재개하기 위해 관련 전문가들을 동원해 설계도를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명동촌은 최근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조선족들 사이에서도 민족교육의 현장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날 오전 시인 윤동주의 생가에 조선족 김해응(40·여)씨가 두 딸을 데리고 찾았다. 용정에 산다는 그는 아이들에게 우리 민족의 역사를 알려주고 싶어 택시를 빌려 왔다고 했다. 큰딸 해옥(15)이는 "우리 민족을 위해 큰일을 한 시인의 집을 직접 보니 기쁘다"며 '청소반장 문익환, 지각생 윤동주'라는 장난스런 문구가 쓰인 칠판 앞에서 환하게 웃었다.
연길 용정/글·사진 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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