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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털던 60대 노인... 특수절도로 입건

북카페청시 2009. 12. 5. 14:11

은행나무 털던 60대 노인이 특수절도라니…

스포츠한국 | 입력 2009.12.05 08:11

 

[경찰기자가 본 사건 25시] 경찰 실적주의 논란

'지역 성과관리제' 도입 후 무차별 입건 사태 함정수사 만연,

형편 어려운 서민 줄줄이 낙인 '가벼운 범죄 입건땐 징계' 대책 실효성 의문

최근 자전거를 훔친 혐의로 입건된 A(70)씨는 자신을 범죄자로 몬 경찰관만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빌딩 관리를 하고 있는 A씨가 자전거 절도범으로 체포된 것은 지난달 11일 오전 6시께.

↑ 경찰이 지난 7월 전국 지구대와 파출소 경찰관을 대상으로 도입한 '지역경찰 성과관리제'가 무차별 입건이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사진은 교통 위반 단속을 하고 있는 경찰관. 스포츠한국 자료사진

 

건물 모퉁이에 세워진 자전거를 발견해 관리사무소 앞으로 옮긴 직후 경찰관이 불쑥 다가와 "그 자전거, 선생님 것이냐"고 물었다. A씨가 "내 것은 아니고 이 건물 학원에 다니는 학생 소유 같다"고 하자, 경찰관은 다짜고짜 "같이 가자"며 관할 지구대로 데려갔다.

A씨가 "자전거가 행인에게 방해가 될 것 같아서 관리사무소 근처로 옮겨 놓으려던 것이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A씨가 남의 자전거를 끌고 50m나 떨어진 관리사무소로 가져갔다며 절도 혐의로 입건했다.

A씨의 아들 B(42ㆍ변호사)씨는 "아버지가 당황한 상태에서 경찰이 불러 주는 대로 진술서를 썼다가 나중에야 현행범으로 체포된 것을 알았다"며 "실제 자전거를 옮긴 거리도 20m 정도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이 지구대는 10월달 실적 평가에서 서울 전체 지구대 중 1등을 차지했다.

경찰이 올해 7월 전국 지구대와 파출소 경찰관을 대상으로 도입한 '지역경찰 성과관리제'가 무차별 입건이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일선 지구대 경찰관들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훈방이나 계도 조치에 머물 경미한 사안까지 마구잡이로 입건해 특히 어려운 형편의 서민들이 범죄자로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경찰 성과관리제'는 강ㆍ절도범 등 범인 검거 활동을 점수로 환산해 인사고과뿐만 아니라 성과급에 반영하며 포상금과 특진 등의 혜택도 부여하는 제도다. 동기 부여뿐만 아니라 나태한 지구대원들의 근무 태도를 바로잡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다.

하지만 일부 경찰관들이 승진 등을 위해 힘없는 서민들을 희생양 삼아 검거 실적을 올리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달 19일 용산구의 한 빌라 앞에 배달을 위해 쌓아둔 신문 30부를 훔친 혐의(절도)로 입건된 이모(62ㆍ여)씨는 신문을 고물상에 팔아 고작 1,600원을 받았다가 범죄자 신세가 된 경우다.

이씨는 "폐지인 줄 알고 가져갔다"고 해명했고 신고한 신문배달원도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했지만 소용 없었다. 한 경찰관은 "길거리에 버려진 물건을 가져가는 노숙자나 고물수집상이 실적 올리기의 일차 타깃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나무 열매 털이'도 경찰 실적 올리기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모 지구대는 지난 9월 대로변 은행나무 열매 300여개를 낚싯대로 턴 혐의로 김모(61ㆍ경비원)씨를 입건하기도 했다. 서울 강북구의 한 지구대는 시가 관리하는 은행나무의 열매를 털었다며 60대 할머니를 특수절도 혐의로 입건하기도 했다.

이 할머니는 이후 불면증 등에 시달리자, 보다 못한 자녀들이 경찰서에 와 항의하는 소동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모 지구대 경찰관들은 아예 은행나무 근처에서 잠복 근무까지 하며 은행 따는 이들을 검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경찰관은 "은행 따는 것은 구청도 신경 쓰지 않는데, 경찰 내에서도 너무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일부 경찰들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함정수사까지 벌이기도 한다. 서울의 모 지구대 소장은 "경찰이 일부러 취객을 가장해 돈을 흘려서 일명 '아리랑 치기' 범인을 잡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며 "어떤 방법으로든 실적을 올려 진급하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경찰관의 실적 평가가 입건한 건수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보니 이 같은 무차별 입건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경찰 관계자들은 말한다. 한 경찰관은 "은행 열매 따는 것을 입건해 봐야 사고 위험에 주의조치를 내리거나 자연훼손에 따른 과태료를 부과하는 정도의 사안이어서 검찰도 기소유예 처분한다"면서 "경찰이 이를 알면서도 잡는 것은 일단 잡기만 해도 큰 문제가 없는 이상 해당 경찰관은 절도 검거 점수를 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관은 "실적제가 시행되면서 공소권 없음으로 결론이 날 사건인 줄 알면서도 일부 지구대에서는 엄청난 사건처럼 부풀려 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배점 기준도 현장 상황을 모르는
탁상공론에서 나왔다는 지적이 있다. 단순 절도 혐의로 한 명을 입건할 경우 10점을 받는데, 3명만 입건해도 살인 피의자 1명을 검거(25점)하는 것보다 점수가 높다. 경찰관들이 실적 올리기 쉬운 단순절도 사건에 매달리는 이유다.

경찰 내부에서 조차 실적 관리제 부작용에 대한 지적이 나오자, 경찰청도 최근 서둘러 대안을 마련했으나 마구잡이 입건을 차단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경찰청은 1일 지역경찰 운영체계 개선을 주제로 일선 지구대ㆍ파출소 근무자 전원이 참석하는 전국 화상회의를 ??훈방이나 계도 조치로 충분한 가벼운 범법 행위자를 형사 입건할 경우 실적 점수를 깎거나 징계하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선 ▦18세 미만 형사 미성년자가 처음 저지른 자전거ㆍ오토바이 절도 ▦생계를 위해 폐지나 생필품 등을 훔치는 행위 ▦5만원 미만 소액 절도 ▦서리 수준의 농축산물 절도 등을 경미사범으로 분류해 이들을 무리하게 형사 입건하는 사례가 적발될 경우 해당 경찰관에 대해 실적 점수를 감점하고, 사안이 심각할 경우 징계 조치하기로 했다.

하지만 경찰청의 이 같은 조치도 여전히 실적 관리제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일선 경찰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서울 강북지역의 한 경찰은 "서울 강남북 등 지역과 환경적 차이에 따라 발생하는 사건의 종류가 다르고, 수법 등도 다른데 획일적인 기준으로 실적을 평가하려 하니 평가가 공정하게 되겠냐"고 말했다. 다른 경찰관은 "일선에서는 실적이 낮으면 최하위 점수를 주겠다, 휴가도 없애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듣는 상황이기 때문에 무리수를 둘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모 경찰서 팀장은 "실적주의가 만연될수록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돼야 할 형사처벌이 늘어나게 될 것이고 그러면 결국 실적주의로 피해를 보는 건 시민들 뿐"이라며 "경찰들에게 무리한 경쟁을 시키면 이런 일이 되풀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태무기자 sphong@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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