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경 하회마을 왜 망치려 하니껴”
한겨레 | 입력 2009.07.05 18:50
[한겨레] 보 설치땐 부용대~만송정 훼손 우려 높아
시민단체 집단대응…현장 조사단도 파견
"한마디로 정신나간 짓입니다."
지난 2일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의 솔숲인 만송정 부근에서 가족과 함께 휴가를 즐기고 있던 김범신(36·인천시 부평구)씨는 만송정과 부용대 사이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보를 만든다는 국토해양부의 계획에 어이없어했다. 김씨는 "우리는 후손들에게 이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산을 원형 그대로 물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걱정도 깊어가고 있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한 70대 주민은 "그곳에 보를 쌓았다가 마을에 물이라도 들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한 뒤, "몇 십년 동안 물난리 한 번 안 겪고 살아왔는데 하회마을을 그냥 그대로 뒀으면 한다"며 혀를 찼다.
국토부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는 하회마을 부용대 절벽에서 만송정까지 너비 200∼300m, 높이 3m의 하회보를 설치할 계획이다. 부용대는 하회마을 맞은 편의 경관이 빼어난 절벽이고, 만송정은 하회마을의 낙동강가 소나무숲으로 천연기념물이다. 하회보는 수량을 확보해 경북도청 이전과 연계한 관광·레저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 주목적이다. 하류로 7㎞ 떨어진 낙동강 본류에도 구담보를 설치할 예정이다. 경북도는 "하회보와 구담보는 고무로 만들어 장마 때는 쉽게 물길을 열 수 있고 평소에도 수량이 일정 수위 이상이면 보를 넘어가는데다, 백사장도 일부를 열어놓아 하회마을의 침수 위험은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날 찾아간 부용대-만송정 보 설치 예정지 부근에는 수십m 너비의 은빛 백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보를 설치해 수량이 많아지면 백사장이 일부 잠기는 것은 물론, 경관이 훼손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이 지역 시민·환경단체들은 "한번 훼손되면 돌이킬 수 없다"며 자연재해까지 염려했다.
이날 함께 하회마을을 찾은 안동시민연대 최윤환 집행위원장은 "보 설치는 하회마을을 재해 위험에 노출시키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까지 어렵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200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은 최근 새 다리가 놓이면서 자연경관 훼손이란 이유로 지위가 박탈됐다.
'안동 문화의 숲을 지키는 사람들' 회원 최미숙씨는 "수천 수만년 동안 자연스럽게 형성된 하회마을의 물줄기 자체가 거대한 역사이자 자연유산"이라며, "이곳에 보를 만들겠다는 것이 누구의 발상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유왕근 하회마을 보존회 사무국장은 "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한다면 당연히 주민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동시민들의 보 설치 반대 활동도 시작됐다. 오는 8일 안동지역 15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안동시민 연대회의는 회의를 열어 하회보 설치에 대한 대응 방침을 결정할 예정이다. 또 대구환경운동연합 등 대구지역 환경단체도 이르면 이번주 안으로 조사단을 꾸려 현장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안동/글·사진 박영률 기자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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